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르파티아 우크라이나 (문단 편집) == [[뮌헨 협정]]과 [[빈 중재]] == 1938년 9월 30일 [[뮌헨 협정]]이 체결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[[나치 독일]]에 국경 지역의 대부분을 빼앗겼으며, [[헝가리 왕국(1920~1946)|헝가리 왕국]]은 외교적 차원에서 [[체코슬로바키아]]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헝가리 영토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 20만 명에서 35만 명 사이의 병력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, 뮌헨 협정 이후 헝가리 육군은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서 위협적인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. 1938년 중반 헝가리 왕국은 체코슬로바키아 남부 국경을 따라 [[슬로바키아]]와 카르파티아로 [[게릴라]]를 침투시키기 시작했다. 뮌헨 협정의 내용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상호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로 결정하였고, 최종 합의를 이룰 수 없었으므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[[나치 독일]]과 [[이탈리아 왕국]]의 [[빈 중재]]를 받아들였다. 11월 2일 헝가리 정부는 슬로바키아의 일부 지역과 카르파티아 지역을 병합했고, 59만 명의 [[헝가리인]]이 이주했을 뿐만 아니라 29만 명의 [[슬로바키아인]]과 37,000명의 [[루신인]]이 이주했다. 헝가리 왕국의 결정으로 인해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의 편제는 재편성되어야 했으며, [[도나우강]]에 있던 방어 진지를 잃었고, 헝가리 국경을 따라 있는 거의 모든 요새와 주요 기지를 잃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